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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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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갈릴리교회 작성일18-09-29 06:25 조회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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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해전” (6-28-2015)

 

지난 목요일은 6.25전쟁 65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에 맞춘 것인지는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6월초 연평해전이라는 영화가 개봉됐다고 합니다. 2002년 월드컵 16강 진출로 온 나라가 열광의 도니가였을 때 서해 연평도에 북한 함정이 북방 한계선을 넘어 남하하고... 결국 함정 간 포격전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 연평해전에서 6명의 우리 해군이 전사했는데 그 스토리가 가슴 뭉클했습니다. 참수리호의 조타수는 가슴에 관통상을 입고 끝까지 조타키를 놓치 않았다고 합니다. 기관총 사수는 북한 함정을 향하여 대응 사격을 하다가 전사했는데... 그의 손이 기관총 방아쇠을 꽉 잡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영화를 본 20-30대 젊은이들이 자기 나이의 젊은이들이 이렇게 영광스러운 일을 했구나! 하고 느낀 청년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젊은이들이 영화를 보고 서로 뭇는 질문이 너 울었니!” “, 나도 울었어...” 언 듯 보기에 자기중심적이고 철없는 젊은이들 갖지만 그들에게 싸울 적이 보이고, 대의가 생기면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도 누군가의 희생으로 한국은 자유의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는 우의를 입은 미군들이 비를 맞으며 전진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19인 용사상이 있습니다. 이중 한 동상은 한국전 당시 대위였던 윌리엄 웨버(89) 전 미 육군 대령을 모델로 했습니다. 웨버 대령은 한국전쟁에서 187공수부대 장교로 참전해 오른 팔·다리를 잃었습니다.

 

웨버 대령의 말입니다. “19512월 원주전투에서였다.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300400m 고지를 놓고 사흘 밤낮으로 중공군과 싸웠습니다. 중공군을 몰아내고 진지를 점령했지만 중공군은 계속 몰려왔다. 적군이 던진 수류탄이 옆에서 터지며 팔과 다리를 잃었다. 피가 흐르다 굳을 정도로 추웠다. 중공군은 막아냈지만 부대원 중 21명이 죽고 34명이 다쳤다. 나도 결국 쇼크가 와 후송됐다. 상이군인이 됐다. 부상 이후 인생이 바뀌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참전은 군인의 의무다. 무엇보다 내가 한국인들이 자유를 누리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줬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한국전쟁은 자유를 원하는 한국 국민을 공산주의로부터 지켜낸 영광스러운 전쟁이다

 

“Freedom is not free.”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유는 누군가의 희생과 섬김으로 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영적원리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과 섬김으로 우리들이 자유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동일하게 누군가를 죄에서 자유케하려면.... 희생과 섬김이 필요하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될 것 같습니다. 마가복음 10:45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