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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도약(跳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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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갈릴리교회 작성일19-09-21 04:02 조회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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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도약(跳躍)” (9-1-2019)


 교회를 다니면서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윤리 도덕적인 수준의 교인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것에 공감합니다. 윤리, 도덕이고, 인류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성경의 내용을 공감하고, 받아드리니까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신앙이라기 보다 예수로 포장된 윤리입니다. 


 성경은 100% “납득, 이해, 공감”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고, 공감이 되지 않는 사실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특별이 죽은 자가 살아나는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 진리입니다. 사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부활, 천국과 지옥은 사후 세계입니다. 세상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 천국과 지옥을 믿는 다는 것은 일종의 도박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참 믿음을 갖는 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단계를 넘어서는 신앙의 도약이 절대적으로 요구됩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실 때 제자들에게 많은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진리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자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만나 주셨습니다. 왜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런데 제자들을 만나 주셨을까? 신앙의 도약을 이루라고, 예수님 평소에 이 세상에서 가르치셨던 진리가 어떻게 영원까지 이어지는지 깨달으라고, 그리고 이 부활을 통하여 신앙의 도약을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을 정말 슬프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슬픔이 밀려오면 슬퍼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슬픔을 “삼키거나”, “외면”하거나 그러치 않은 척“가면”을 씁니다. 이러면 병이 된다. 나중에 더 크게 터지거나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오랜 시간 슬픔을 품고 있습니다. 10년 전, 20년을 지내도 슬픔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게 상처가 되고 트라우마가 된다. 슬픔이 내 인생의 주인 되어 버린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이 잠든 사람의 문제를 모르고 지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소망을 가지지 못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슬퍼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살전4:13) 왜 바울은 죽은 사람들을 잠든 사람들이라고 할까? 부활의 소망 때문입니다. 부활은 죽음을 뛰어넘게 합니다. 이게 신앙의 도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