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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도가 힘이 없고 방황 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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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갈릴리교회 작성일19-09-21 03:59 조회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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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도가 힘이 없고 방황 했던 이유” (8-25-2019)


‘하나님 앞에 달라’고만 하고 사랑으로 기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마켓에 가면 아이들이 부모에게 자꾸 뭘 사달라고 조릅니다. 그럴 때 보통 어떻게 합니까? 사달라는 대로 다 사줄 수는 없으니 원하는 걸 사주지 않고 때로는 야단을 치기도 합니다. 아무리 졸라도 부모가 안 들어주면 아이들은 잔뜩 골이 나서 화를 내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그런데 쇼핑을 마치고 나오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빠엄마 옆에 딱 달라붙어서 손을 잡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부모님 품에 안겨 잠이 듭니다. 


 아이들이 왜 그럴까요? 아이들이 조르는 것은 부모의 사랑을 믿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버지라고 믿으니까 마음껏 구하는 것입니다. 설령 부모님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아도 자기를 사랑한다고 믿으니까 계속 조르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사주지 않으면 불평하기는 해도 상처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금세 또 다른 것을 구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도의 삶입니다. 


 사랑 안에서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조르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부모를 조르는 것은 아이가 여전히 부모인 나를 믿고, 내 사랑을 믿고, 내 사랑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남의 아이를 데리고 마켓에 가보십시오. 뭐 사달라고 안 합니다. 모르는 아줌마 아저씨한테 뭘 사달라고 하겠습니까. 사줄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꼭 사고 싶은 게 있어서 “이것 좀 사줄 수 있어요?”라고 했다가 거절이라도 당하면 그 다음부터는 아예 구하지 않습니다. 사랑 안에서 기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의 사랑 안에 있으면 수없이 거절을 당해도 계속 기도하게 됩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조르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전제되지 않은 기도는 오래 하지 못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기도할 힘을 잃어버리는 이유도 사랑 안에서 기도하지 못해서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머리로는 다 압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을 “좋으신 내 아버지”라고 믿고, 그 사랑 안에 거하는 믿음이 너무 부족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정말 사랑하는 것을 믿으면 기도는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아는 것과 실제 아버지라고 믿는 것에 따라 달라집니다. 기도가 거절될 때도, 또 마귀의 방해로, 응답에 시간이 걸릴 때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더욱 신뢰하기 원합니다. 내 기도가 그동안 힘이 없고 방황했던 이유는 사랑의 기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달라고만 하고, 사랑으로 기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 시간 기도-, 유기성 목사)